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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과 의식확장(19)

박선희 박사의 힐링 칼럼

일상적인 의식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의식으로 인지되지 않는 것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대한 이해는 본능적으로 인식되고 경험되는 영역이라고 한다. 본능적으로 인식되는 영역이란 말은 즉 인간이면 누구나 어느 정도까지는 무의식의 세계를 감지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20세기에 들어서서는 과학은 무의식의 영역까지 파고 들었고 현재까지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탐구한 서적과 연구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한 명상, 요가, 동양종교, 변성의식상태, 심령현상, 환생, 유체이탈, 임사체험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무의식 중요성에 주목하게 되었고, 영적세계에의 접근이 누구에게나 열린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영역에의 관심은 무한경쟁 속에서 치유를 갈구하는 현대인들의 의식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는 잠재되어 있는 능력과 의식의 원형을 일깨워 자기 계발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과학자들은 인간은 뇌를10% 밖에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 기존의 의식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무의식의 영역까지 의식을 확장시킨다면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일까?

 

정신분석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t Freud)는 의식을 바다위에 떠있는 빙산의 일각이며, 무의식은 바다 속에 잠겨있는 나머지 부분이라고 했다, 반면 칼 융(Carl Jung)은 의식을 바다에 떠있는 섬, 섬을 제외한 나머지 바다가 무의식이라고 했다. 이 두사람의 연구는 어느 선까지는 공통되나, 무의식의 심층적인 부분에 들어서면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인간의 의식을 인식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하는 기억을 무의식의 범주로 생각했다면, 융은 인간이 존재한 태고로부터 지금까지 의식에 없는 기억을 무의식으로 본 것이다. 말하자면 프로이드가 이해한 무의식이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말하며 대개는 성(性)적 본능에 관한 것이었다. 칼융의 경우는 무의식의 깊은 곳에 집단무의식이 있고 그 안에서 인간정신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융은 인간 의식의 자아초월적 (transpersonal ) 영역 즉 연구 분야를 의식연구, 영적탐구, 심신관계 및 의식의 변용까지 확장시켜 탐구했던 최초의 저명한 심리학자였다.

 

융은 집단 무의식에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공통된 기억이나 이미지가 잠재해 있다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현대판으로 자란 6살난 아이가 갑자기 옛 조상님의 꿈을 꾸고 장군신이 보이는 등 무병을 앓다가 무당이 되는 케이스가 있다. 동양에서 돼지꿈은 재물이나 이권을 얻게 되는 길몽으로 여겨지며, 돼지꿈을 꾸고나서 실재로 복권에 당첨된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한다. 버지니아 비치의 기적의 사나이라 불리던 에드가 케이시라는 사람은 정확한 의학적 투시에 의해 환자를 진단하고 또한 치료법을 처방한다.

 

그는 22년 동안에 약 2천 5백 건의 투시 치료를 했으며, 몇 천 마일씩 떨어진 곳에서도 투시로 진단을 했다고 한다. 4살짜리 꼬마 아이가 자신은 큰스님의 환생이라며 불경을 좔좔 외고 예를 갖추어 목탁을 치고 절을 한다, 그 아이는 결국 스스로의 의지로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일상적 의식으로 해명할수 없는 꿈, 환생, 투시, 텔레파시와 같은 영역의 현상들을 칼융은 집단 무의식으로 해석했다. 집단 무의식은 본능과 마찬가지로 타고나고 물려받는 것이라고 하는데, 집단 무의식의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종종 위대한 창조와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의 인식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오감과 통해서 인식 하지만, 우리는 눈을 감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영상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듯이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꾸면서 의식이 아닌 무의식으로의 자신을 지각한다. 꿈은 일상에서 의식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세계를 만나게 해 주는 중요한 접점이다. 정신분석에서 꿈의 해석을 중요시 해온 이유는 무의식 속에서 신경증원인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직감이나 예감을 느끼며 일상적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무의식을 지각한다. 뿐만 아니라 초능력, 기시감, 심령현상, 임사체험, 환생체험등 무의식에 의해 지각되는 현상은 셀 수 없이 많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원성이 있듯이 흑마술, 강신술, 항정신성 약물의 만용, 사이비 종교교주숭배등 기이한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또한 실제로 심령현상에 시달리거나 악령에 빙의되어 고통 받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들을 우리와는 거리가 먼 신비한 현상쯤으로 생각한다. 무조건 미신이나 사기로 치부하는 고정관념도 강하다. 이러한 결과는 현대과학이 주입한 교육의 결과이기도 하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말한다. “현대 과학은 영적 눈을 뜨는데 방해가 된다. 왜냐하면 과학은 일상 감각에 통용되는 것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라고. 자신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만을 보든 지식의 기준으로 삼는 과학은 고차적 감각에 이르는 통로를 가로막는 무수한 편견을 낳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과거 수세기에 거처 이러한 초월적 현상이 무시되어온 까닭은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등의 주류학계에 인정받지 못하고 억압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하수 있겠다.

 

독일 철학자인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는 “초감각적 세계를 관찰하는 사람은 앞으로 영계를 탐구하려는 사람에게만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모든사람을 향하여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인간에게 관련한 이야기 이므로.” 라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고차적 감각은 소박한 인간이건 지적수준이 높은 사람이건 이 감각에 대해서는 공평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살다보면 한번쯤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무엇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 인가하는 의문을 갖는다.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우리는 생각했던 것 보다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답을 찾기 위해 절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철학이나 문학에 몰두하여 답을 찾아내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찾는 여정의 공통점은 자신의 내면을 주시하면서 시작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의문에 부딪히면 나는 종종 내가 2차원에 살고 있는 개미가 된 듯한 착각이 든다. 2차원의 세계밖에 인식할 수 없는 개미를 번쩍 공간으로 들어올려 3차원을 경험하게 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이상의 차원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고차원적 감각을 가지려면 의식을 확장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는 듯하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엄청난 인식의 확장을 열어주는 입구이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열린 사고와 자유로운 진리로 접근한다면 무의식의 문을 열고 들어감으로서 영적세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과 자연계의 수수께끼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고자료

 

루돌프 슈타이너(Rudulf Steiner), 2001, 신지학 인간의 연적 본질에 대한 신성한 탐구, 물병자리

 

켄 윌버 (Ken Wilber), 2012, 무경계, 정신세계사

 

Gina Cerminara, 1963, Many Lives Many Loves, DeVorss & Company Publ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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