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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과의 만남 18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이 길의 끝은 어디입니까?

 

 

 

 

(시사1 = 김재필 기자) 지인의 전시가 대구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축하도 할겸 동대구행 KTX를 탔다

 

그러나 나의 또다른 목표는 구름 위에 앉아 있다는 동화사 마애불을 만나는 것이었다.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혼자였는데 오늘은 대구에 사는 화가와 경주에서 달려 온 사진가와 함께 하여 호강 하는 여정이 되었다.

 

동화사는 서기 93년(신라 소지왕 15년) 극달(極達)이 세운 유가사(瑜伽寺)를 832년(흥덕왕 7년)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건(重建)한 사찰로 이때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 동화사(桐華寺)라 개칭하였다고 전해지는 이 사찰은 원효와 의상이 수도하였던 곳으로 하늘과 땅의 경계를 그어놓은 봉우리마다 부처의 대자대비한 법음이 대장경처럼 펼쳐져 있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합창되어 들려오는 푸른 계곡마다 옛 신라의 화랑정신과 삼국통일의 정기가 서려 있는 신라의 작은 불국토라 할 수 있는 높이 1,100여미터의 팔공산에 봉황의 기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동화사엔 두 곳의 입구가 있다.

동화문과 봉황문이다.

전에 촬영차 몇 번 왔을 때마다 동화문을 거쳐 들어 갔는데 이번엔 동화문 안내자가 마애불은 봉황문쪽이라고 알려준다.

 

봉황문 매표소를 지나 주차를 하고 봉황문을 향해 걷다 보니 오른쪽에 10여미터 크기의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진 바위다. 땅에서 5미터 정도의 높이에 통일신라시대에 돋을새김으로 조성된 1미터 크기의 마애여래좌상이다. 천계에서 하강하여 구름위에 떠 있는 양련,복련의 연꽃 무늬가 새겨진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 마애불은 동화사 비로전의 비로자나불상이 있는 서쪽을 향해 앉아 있다.

 

동시대의 조각 수법이 같아 보이는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남성적인 인상이라면, 이 마애여래좌상에선 차가운 화강암에서 따스한 피부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원만하게 조성된 얼굴에서 인자하고 사랑스런 여성적인 인상을 느낄 수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에 대어 손끝이 아래를 가리키고(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꼽 앞에 놓았다.

다리는 반가부좌한 자세로 오른쪽 다리를 대좌 아래로 자연스레 내려놓았다.

두 어깨를 덮은 법의(法衣)는 세밀하면서 유연하고 오른쪽 어깨에 달린 가사의 끈 장식과 아래로 흘러내린 평행으로 도형된 옷주름선에선 회화적인 느낌까지 받았다.

끝이 뽀족한 선두(船頭) 모양의 광배(舟形光背) 안에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따로 새겼으며 가장자리에는 타오르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잘 닦은 길이 나 있지만 1,000여전 조성당시엔 첩첩산중이었을 터,

따라서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계곡엔 안개 구름이 가끔 일어났을 것으로 연화대좌 밑에

구름을 새겨 놓은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안개구름은 위에서부터 걷히면서 마애여래의 신비스런 얼굴이 보여 주고는 연화대좌에서 머무는 순간 구름문양으로 바위에 박힌 것이 아닐까?

 

이 곳에서 5분여만 걸어 가면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경계인 일주문(봉황문)에 다다른다.

지금까지 많은 수행자들은 산중에서 진리를 찾기 위해, 중생들은 현세에서의 위안과 내세에서의 평안을 얻기 위해 이 길을 걷다가 위에 좌정한 여래불에게 ”부처님 이 길(인생의 길)의 끝은 어디입니까?‘ 라고 물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 우리도 ’우리 갈길의 끝이 어딘지? '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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