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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20] 박두진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박두진, 시 ‘해’

 

이번 칼럼에서는 청록파 시인 중의 한 명인 박두진 시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박 시인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경기도 안성시에서 태어났다. 박 시인은 초기에 역사 및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작품을 썼고, 후기엔 기독교적 신앙체험을 고백하는 작품을 주로 썼다. ‘해’라는 작품은 일제암흑기를 몰아낸 8·15 광복의 벅찬 기쁨 속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평화롭게 화합 및 공존하는 이상적인 삶에 대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1연은 ‘새로운 광명의 세계에 대한 소망’을, 2연은 ‘어두운 세계의 거부’를, 3연은 ‘새로운 세계의 동경’을, 4~5연은 ‘화합과 공존의 삶’을, 6연은 ‘화합과 공존의 세계에 대한 희망’으로 각각 구성됐다.

 

박 시인의 ‘해’를 소개하는 이유는 앞선 칼럼에서 청록파 시인들을 다룬 점도 있지만, 지난 1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올림픽이 취소될 수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점도 있었다. 코로나 기승으로 도쿄올림픽이 취소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인데, 전세계의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이 질병으로 인해 흔들리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고노 다로 일본 행정개혁 담당상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지만, 이것(올림픽)은 둘 중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다”며 애매모호한 발언을 했다. 올해 도쿄올림픽을 볼 수 있길 소망하는 바람이다.

 

“박두진 시인이 ‘해’를 통해 화합을 노래했듯, 올해 화합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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