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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13] 소식(蘇軾) ‘후석고가(後石鼓歌)’

冬十二月歲辛丑(동십이월세신축) 我初從政見魯叟(아초종정견노수) / 舊聞石鼓今見之(구문석고금견지) 文字鬱律蛟蛇走(문자울률교사주)

 

細觀初以指畫肚(세관초이지화두) 欲讀嗟如箝在口(욕독차여겸재구) / 韓公好古生已遲(한공호고생이지) 我今況又百年後(아금황우백년후)

 

强尋偏旁推點畫(강심편방추점화) 時得一二遺八九(시득일이유팔구) / 我車旣攻馬亦同(아거기공마역동) 其魚維鱮貫之柳(기어유서관지류)

 

古器縱橫猶識鼎(고기종횡유식정) 衆星錯落僅名斗(중성착낙근명두) / 模糊半已隱瘢胝(모호반이은반지) 詰曲猶能辯跟肘(힐곡유능변근주)

 

娟娟缺月隱雲霧(연연결월은운무) 濯濯嘉禾秀稂莠(탁탁가화수랑유) / 漂流百戰偶然存(표류백전우연존) 獨立千載誰與友(독립천재수여우)

 

上追軒頡相唯諾(상추헌힐상유낙) 下挹冰斯同鷇㝅(하읍빙사동구누) / 憶昔周宣歌鴻雁(억석주선가홍안) 當時籒史變蝌蚪(당시주사변과두)

 

厭亂人方思聖賢(염난인방사성현) 中興天爲生耆耈(중흥천위생기구) / 東征徐虜闞虓虎(동정서노감효호) 北伐犬戎隨指嗾(배벌견융수지주)

 

象胥雜遝貢狼鹿(상서잡답공낭녹) 方召聯翩賜圭卣(방소련편사규유) / 遂因鼓鼙思將帥(수인고비사장수) 豈爲考擊煩矇瞍(개위고격번몽수)

 

何人作頌比嵩高(하인작송비숭고) 萬古斯文齊岣嶁(만고사문제구루) / 勳勞至大不矜伐(훈노지대부긍벌) 文武未遣猶忠厚(문무미견유충후)

 

欲尋年歲無甲乙(욕심년세무갑을) 豈有名字記誰某(개유명자기수모) / 自從周衰更七國(자종주쇠경칠국) 意使秦人有九有(의사진인유구유)

 

掃除詩書誦法律(소제시서송법률) 投棄俎豆陳鞭杻(투기조두진편뉴) / 當年何人佐祖龍(당년하인좌조룡),上蔡公子牽黃狗(상채공자견황구)

 

登山刻石頌功烈(등산각석송공렬) 後者無繼前無偶(후자무계전무우) / 皆云皇帝巡四國(개운황제순사국) 烹滅強暴救黔首(팽멸강포구검수)

 

六經既以委灰塵(육경기이위회진) 此鼓亦當遭擊剖(차고역당조격부) / 傳聞九鼎淪泗上(전문구정륜사상) 欲使萬夫沉水取(욕사만부침수취)

 

暴君縱欲窮人力(폭군종욕궁인력) 神物義不汙秦垢(신물의불오진구) / 是時石鼓無處避(시시석고하처피) 無乃天工令鬼守(무내천공령귀수)

 

興亡百變物自閑(흥망백변물자한) 富貴一朝名不朽(부귀일조명불후) / 細思物理坐歎息(세사물리좌탄식) 人生安得如汝壽(인생안득여여수)

-소식(蘇軾), 시 ‘후석고가(後石鼓歌)’

 

이번 칼럼에서는 과거 중국 북송의 시인이자 정치가로 정평이 난 소식(蘇軾)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길고도 긴 작품은 소식 선생의 후석고가(後石鼓歌)란 시다. 우선 소식의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東坡)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식이라는 이름보다 소동파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 소순 및 동생 소철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도 통했다. 당송팔대가는 중국 당나라의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 등 8명의 산문작가를 총칭하는 말이다.

 

후석고가에 등장하는 ‘석고’는 주나라 선왕 때 주나라 개국임금 문왕 및 무왕의 치적을 적은 글로 추정된다. 석고가는 하나라 우왕의 치적을 기록한 구루비문과 견줄 만큼 훌륭한 작품임을 소식은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 대해 명나라 양신 선생이 해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양신 선생은 “부귀는 한 순간이지만 이름은 영원히 썩지 않는 것처럼 신우비 또한 영원할 것”이라며 “천하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서 인류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해서 청사에 이름이 남아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후석고가를 통해 양신 선생 해석에 절반 이상 동의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해석을 더하자면 조선 후기 숙종 때 김만중 선생이 쓴 고대소설인 ‘구운몽’이 후석고가와 유사한 게 아닌가 싶다. 소식 선생은 후석고가 마지막 문단에 “자세히 사물의 이치 생각하며 앉아서 탄식하니, 인생이 어쩌면 이 석고(石鼓)처럼 영원히 남을 수 있겠나”라고 끝을 맺었다. 여기서 구운몽에서 다뤄지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의 느낌을 후석고가에서 받을 수 있었다. 일장춘몽은 한바탕의 꿈이라는 뜻이다.

 

필자의 해석과 양신 선생의 해석을 더해보면 이렇다. 구운몽에서도 성진 스님은 양소유가 되어 부귀를 누린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순간, 인류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해서 이름을 빛내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일장춘몽의 상황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해도, 그 마지막이 씁쓸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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