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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12] 이형기 ‘대(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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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밭에 쭉쭉 ‘대(竹)’가 솟아 있다.
날카롭게 일직선으로 위로만 뻗은 키,
곧은 마디 마디.

 

왕조시대에 민란에 앞장선
원통한 분노,
분노가 죽창으로 꽂혀 있는 ‘대(竹)’.

 

다시 보면 여름에도 차가운 감촉,
근살 하나 없이 온몸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하늘에 닿아 있다.

 

혼자 있거나 무리지어 있거나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대(竹)’,

밤중에도 꼿꼿하게 서서 잠잔다.

 

깨뜨려도 부서지지 않고
대쪽이 되는 ‘대(竹)’.

 

꽃은 피우지 않는다.
꽃 피면 죽는 개화병,
격렬한 사라짐이 있을 뿐이다.
-이형기, 시 ‘대(竹)’

 

‘기자’로도 활약했고 ‘평론가’로도 활약했던, ‘진주가 낳은 문학가’ 이형기 시인의 시 한편을 ‘또’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지난달 19일 7차 칼럼에서 이 시인의 ‘낙화’를 소개한 바다. 하지만 이 시인의 시는 ‘낙화’뿐 아니라, 소개하고픈 시들이 너무 많았다. 따라서 이 시인의 또 다른 작품인 ‘대(竹)’를 이번 칼럼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유하고자 한다.

 

이번 시의 제목인 ‘대’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민초(民草)’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필자는 해석했다. 이러한 해석에는 “왕조시대에 민란에 앞장선 원통한 분노, 분노가 죽창으로 꽂혀 있는 ‘대(竹)’”라는 대목이 한 몫 했다. 이번 시는 군사적 사기를 진작시키는 모습도 담고 있다. 몸이 무너진다 해도 대쪽으로 남아서 끝까지 항전하는 불굴의 정신이 시에 함축된 느낌을 받았다. 대인이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게 불굴의 지조가 아닌가. 그런 느낌을 확실하게 주는 게 이 시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끝으로 ‘역동(易東)’ 우탁(禹倬, 고려 후기 유학자) 선생의 한 구절로 이 시의 해석을 대신하고자 한다. 우탁 선생은 과거 “독립불구(獨立不懼) 둔세무민(遯世無悶)”이란 말을 했다. 이 말은 ‘홀로 서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은둔해서도 번민하지 않는다’는 뜻을 지녔다. 이 시인의 ‘대’ 역시 이를 잘 표현한 시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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