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포스트 메뉴

[우태훈의 詩談/10] 릴케 ‘내 눈을 감기세요’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나는 당신을 내 마음으로 잡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멈추게 하세요, 그러면 내 머리가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내 머리에 불을 지르면 그때는 내 핏 속에서 당신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 ‘내 눈을 감기세요’

 

지난 9화차 칼럼에 이어 이번에도 서양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칼럼의 주인공이던 루 살로메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의 ‘내 눈을 감기세요’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인 릴케는 1875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비롯한 다수의 명작을 만들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확보한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가 독일의 유명한 문학가가 된 데 대해 많은 이들은 궁금할 것이다. 실제 문학계에서도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실의 직할지’인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 가정에서 태어난 릴케가 불우한 환경을 딛고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가장 많이 주목하는 시인 겸 문학인이 된 데 대해 “놀라운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릴케는 유년시절을 육군학교에서 보내게 된다. 이후 릴케는 육군고등실과학교를 중퇴하고, 백부의 후원으로 인문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합격한 후 1895년 겨울학기부터 프라하대학교에서 문학, 역사, 미술, 법학 등을 공부하게 된다. 릴케가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뮌헨대학교에서 루 살로메를 만나면서다. 릴케보다 14살 연상이던 루는 릴케에게 러시아어를 알려줬고,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와의 만남 등을 주선했다. 이때 릴케는 3부작 시집인 ‘시도집’을 펴내는데 이는 러시아 여행에서 얻은 체험의 소산이라고 한다. 아울러 이 시기에 쓴 장시 ‘코르넷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1906년)’는 첫 출간 후 인젤문고 제1호로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설명이 길었다. 이처럼 릴케가 유명한 시인 겸 문학가로 발돋움한 계기는 전편 칼럼의 주인공인 루 살로메의 영향이 상당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내 눈을 감기세요’도 루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시를 살펴보면 루를 향한 릴케의 애절한 마음이 잘 녹아있다. 이인동심이면 기리단금이라고 한다. 즉 두 사람이 뜻이 하나라면 쇠도 끊는다는 말인데, 위 작품은 그러한 뜻을 잘 표현했다고 자부한다.

 

올해의 11월은 작년의 11월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추위가 빠르게 찾아온 점이다.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온 현재, 릴케의 정열적인 시를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마음의 온도는 여름과도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배너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