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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7] 이형기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시 ‘낙화’

 

‘기자’로도 활약했고 ‘평론가’로도 활약했던, ‘진주가 낳은 문학가’ 이형기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낙화’다. 이 시는 1963년 그의 첫 번째 시집인 ‘적막강산’을 통해 세상에 등장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결별 뒤 고독을 담담히 해설함은 물론, 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함을 아름답게 구현했다. 특히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을 ‘인간의 사랑과 이별’ 관점과 엮어서 서술한 점은 많은 이들의 찬사를 자아낸다.

 

그래선지 시의 첫 구절인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와 시의 네 번째 구절인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는 여러 번 읽어도 여운이 오래 머문다. 저자는 자연의 순리대로 만남의 행보 역시 그 순리를 따르는 게 아름다운 것임을 말하고자 했다. 달리 보면 그 순리를 받아들이는 길, 그 이외의 길은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최선을 다한 사랑엔 이별이 두렵지 않을 것. 그리고 이별 또한 사랑의 연장선에서 묵묵히 받아들일 터. 가을이 조심스레 찾아온 10월. 길가에 떨어지는 낙화를 보면서 그간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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