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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홍수와 도산회의

 

‘서경’의 기록에 따르면, 상나라는 모두 5번 천도하였는데, 그 이유가 모두 황하의 대홍수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홍수를 다스리는 것은 중화권 국가 지도자의 첫째가는 임무였고 이는 중국의 치수신화(治水神話)로 나타난다.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에는 곤우치수(鯀禹治水)신화가 있는데 곤(鯀)이 홍수를 막기 위하여 상제(上帝)만이 가지고 있는 식양(息壤)이라는 흙을 훔쳐 1,000리에 달하는 제방을 쌓았지만, 이것이 탄로가 나고 제방도 무너져 죽음을 당한다.

 

그의 아들 우(禹)는 아버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13년간의 노력 끝에 치수에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곤(鯀)은 굳세고 정직하였다. 홍수를 막기 위해 9년간 전심전력으로 제방을 쌓고 물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엄청난 홍수를 다스릴 수 없었다.

 

곤(鯀)의 아들 우(禹)는 부친의 경험을 토대로 보다 발전된 방법을 연구한다. 홍수를 막을 수 없다면 길을 내어 잘 흐르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래서 제방으로 막는 한편 필요한 곳에는 물길을 내어 바다로 흘러가게 하였다.

 

우(禹)는 이 공적으로 대우(大禹)로 칭송받게 된다. 그리고 치수신화의 주인공 우(禹)는 하(夏)나라’의 시조가 된다. 성경의 노아의 방주 시대를 성경에 나타난 족보로 역산해 보면 노아의 대홍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BC 2300여 년이 된다.

 

당시를 우리나라의 고대사와 비교해 보면 대략 단군 부루시대와 일치한다. 부루단군의 역사는 즉 재위기간은 BC 2240년~BC 2183년이다. 이러한 부루단군 시대에 중화의 우(禹)임금이 치수를 위해 도움을 요청한 시기가 바로 부루 단군 재위 2년인 BC 2239년이다.

 

이런 기록은 중국의 사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번한세가’에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서경에 나타난 중국의 상황은 우(禹)가 통치한 요순시대였다. 그 당시에도 중원지역에는 대홍수가 일어나고 우(禹)가 치수정책을 폈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우(禹)는 치수에 대한 대책이 없자 단군 부루에게 치수의 가르침을 청했다. 이때 열린 회의가 도산회의(塗山會議)이다. 이 회의에서 우(禹)는 신서(神書)를 얻어 치수에 적용하여 성공하게 된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갑술 67년(기원전 2267년), 단군께서 태자 부루(扶婁)를 파견하여 도산(塗山)에서 우(禹)와 만나게 하였다.

 

태자가 우(禹)에게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방법을 전해 주었다.’ 제2대 부루(扶婁)단군(단제, 임금) 시대에 열린 도산회의(塗山會議)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제회의이자 최초의 치수법(治水法) 기술이전을 위한 회의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회의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제후국인 도산국(塗山國)에서 열렸다. 도산국(塗山國)은 단군조선에 속한 작은 나라이며 그곳은 동이족(東夷族)의 한 갈래인 회이(淮夷)들이 살던 땅이다. 도산(塗山)은 옛 치우천황(蚩尤天皇)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도산(塗山)은 중국 안휘성(상해주변에 있는 지역) 회남시(淮南市) 북동쪽 방부시(蚌阜市) 서쪽이다. 서경(書經)의 우서(虞書)편에 우(禹)임금은 취우도산(娶于塗山) 즉 도산국(塗山國) 제후의 딸에게 장가 들었다. 도산국(塗山國)은 수춘현(壽春縣) 북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사마천 사기 130권 중 본기가 12권이며 이중 2번째 하본기(夏本紀)에서 우(禹)가 도산씨족(塗山氏族)에 장가든 지 나흘 만에 집을 떠나 치수사업을 하다가 아들 계(啓)를 낳았는데도 아들을 귀여워할 틈도 없이 오직 물과 땅을 다스리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사 기록인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사실여부에 대해 말이 많지만, 이런 기록을 포함한 정밀한 단군의 연대가 나와 있는 기록을 이유 없이 무시할 수는 없다. 상당한 부분의 기록이 중국의 고대사 내용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비석 등 유적이나 천문학적 기록과 증거 등을 통하여 고대사가 사실임이 입증되기도 한다.

 

도산회의의 의의는 성경의 노아의 시대와 동시대인 요순시대에도 중국에 대 홍수가 있었으며 이 홍수를 극복하기 위하여 도움을 요청한 우임금에게 2대 부루 단군이 가르침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지금부터 4,287년 전인 단군시대의 중화는 단군의 제후국 정도임을 추측하게 한다. 왜냐하면 단군의 나라는 고도의 수리과학과 기술적 능력을 지닌 강력한 지도국이자 주변국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신묘한 능력을 지닌 나라였기 때문이다.

 

역사는 실증주의에 의거 가시적인 증거가 필요하지만 기록자체가 증거의 하나이므로 환단고기 같은 기록을 무시하지 말고 연구를 통한 긍정할 점을 찾아내서 그 찬란했던 한국의 역사를 회복하도록 하여야 한다. 단군의 역사는 어디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는가?

 

간단한 예를 들면, 1960년대까지 우리가 늘 쓰던 단기(檀紀)가 그 증거 아닌가? 지금은 서기로 쓰지만 1960년대만 해도 단기를 사용하는 문서를 심심치 않게 보곤 했었다. 2020년 한국이 코비드 19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4287년 전의 도산회의에서 수자원 관리 공법을 중화에 전수해준 단군의 리더십과 다르지 않다.

 

코비드 19 판데믹에 중화의 물난리 마당에 환단고기까지 들먹이게 되는 걸보니, 이제 지구 역사의 한 순환 사이클이 반환점을 완전히 돌아서 원점을 회복하고 다시 시작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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