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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치기와 신발 한 짝의 절규

 

학문을 탐구하는 방식을 보면 우선 우리는 발견(Discovery)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발견은 우연한 발견과 의도적으로 탐색을 통한 발견이 있다. 대체로 발견은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는 어떤 진실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문의 연구를 여행에 비유하면 발견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도시에 가서 대로를 걷거나 아니면 뒷골목을 걸어가며 새롭게 보이는 것들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을 포착하면서 발견은 이루어진다. 여행자는 눈에 확 와 닫는 것만을 추구하므로 그 외의 것은 다 생략되거나 무시된다.

 

그 다음은 해석(Interpretation)의 방법이다. 해석의 방법은 연구자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하여 그들이 세상이나 진리에 대하여 가지는 의미를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사물이나 진리에 대한 입장이나 해석은 다 주관적 시각에 기반 하여 다를 수 있으므로 연구자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거나 섞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견해를 정확히 설명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6살 아동이 보는 학교에 대한 개념은 어떤 것 일까? 12살 아동의 학교에 대한 개념은 무엇인가? 와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서 개념화해야 한다.

 

그러자면 연구자는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느껴보고 그들의 세계에 잠입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생각을 정확히 읽고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입증(증명 : Demonstration)이다. 입증은 주로 19세기 독일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확립한 반증주의(Falsification)에 기반해서 영 가설을 세우고 이를 기각하는 방법을 통하여 가설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과학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백신개발이나 우주여행, 건축공학 등 제반 엔지니어링 그리고 주로 수학과 확률론에 기반 한 가설통계검증방법(Hypothetico Process)을 활용한 자연과학적 방법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의 연구방법은 논리 해석적 방법(Hermeneutics)에 기반하고 있는 현상학(Phenomenology)이다.

 

현상학은 사안의 실체를 꿰뚫는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 복합적 분석을 통해 진실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주요 중심 의제를 분석하되 말초적인 것과 중추적인 주제를 왕복하면서 분석하고 원점에서 시작하여 종합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든지 관련된 모든 문헌을 분석하여 중심 주제를 찾아내서 거기서 진리가 드러나도록 한다.

 

현상학의 대가로 에드문드 후설(Edmund Husserl)과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손꼽는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제자였는데 두 사람은 사상(事象)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한다. 후설은 어떤 사안의 본질을 보는데 있어서 철저히 원점에서 접근(Blindness)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어느 사안에 대해 논할 때 과거의 경험은 철저히 분리하여 괄호 속에 닫아놓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편견을 막고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사안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이와 반대로 과거의 경험을 완전히 막지 않고 경험의 도움을 통하여 사상을 해석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후설은 현상학을 통해 어떠한 대상이 여러 사람의 경험에 의해 달라 보일 수 있음을 주목하고,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현상'. '사태 자체'로 보기 위해서 선입관 없는 관점에서 대상을 보아야 한다고 하였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그 대상에 덧입혀진 생각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진실을 발견을 추구하였다. 한편, 하이데거는 대상을 존재로 보고, 그 존재에 대해 탐구를 한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자인 인간에 관심을 가진다. 인간만이 존재를 탐구할 수 있다고 하여 인간을 '현존재'라고 부르며 이 인간은 주어진 세계와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고, 그 상황 속에서만 주변의 존재를 인식하므로 현존재를 다시 '시간-내-존재'라고 부른다.

 

그리고 존재가 있게 한 앞선 구조를 선구조라하며 이러한 존재에 대한 개념들이 원을 그리며 반복적으로 전후, 좌우, 상하로 움직이며 가림 막을 털어내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육을 많이 받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너무나 선명하게 괄호 치기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괄호 치기란 오직 나의 주장만 빼고는 모두 괄호 안에 담아 무시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배제하는 그런 것과 같이 말이다. 괄호 치기를 너무 남용하면 세상은 괄호안의 존재들과 괄호 밖의 존재로 철저히 이분되어 물과 기름처럼 화합하지 못한다.

 

물론 하이데거도 지나치게 괄호 치기를 비난하고 유연해지려다가 히틀러에게 이용당하여 독재를 옹호하는 철학을 펴다가 후에 잘못되었음을 뉘우치고 정상으로 복귀하였지만 말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삶 속에서 좀 더 유연해지고 포용적이 될 필요가 있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자.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학벌도 높고 많이 배운 사람들 아닌가? 많이 배웠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유연하고 포용적이며 절제하는 사람이다. 성경 잠언 9장13절에 의하면 미련한 자는 떠들기를 좋아하고 감정에 의하여 행동하고 어리석은 말을 한다.

 

어리석음은 단순하다는 뜻인데 악을 대항하거나 유혹을 저항할 힘이 없을 뿐 아니라 결과는 전혀 생각지 않으며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사람이다. 이것은 지나치게 괄호 치기를 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러니하게도 현상학적 시각으로 괄호 치기 하는 사람들의 습성을 보면 그들의 진면목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연결의 인공지능 시대에서 괄호 치기를 통해 나만의 세계를 지키려고 하는 시도는 더 큰 고립을 가져올 수 있다. 지난 주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 백선엽 장군의 죽음, 그리고 이재명 경기도 지사의 기사회생 대법원 판결, 개원국회에서는 대통령 시정연설이 있었다.

 

그리고 모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어떤 시민은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가짜 인권주의자라고 소리치며 자신의 신발을 벗어 문 대통령을 향해 던졌다고 한다. 요즘 들리는 진영 간 또는 진영 내의 상호 불신은 얼마나 더 심화되어야 끝날까? 내부에서부터 국격이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호가 요동치는 파도에 흔들려서 두통이 생길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정말 힘들다. 우리 모두 진영이나 파벌 간 괄호 닫기보다 문을 열고 서로 연결하고 대화와 양보 좀 하자.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법이며 불신보다 더 큰 내부의 적은 없다.

 

소통하고 해석하고 연결하고 공유하는 가치아래 명예를 추구하며 상호 존중하기 위하여 우리는 가르치고 배우고 그리고 하나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잊혀 지거나 또는 사라진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가?

 

우리라는 존재는 살아있음으로, 그리고 상대를 향하여 인정되고 정당화 될 수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고 아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를 노골적으로 괄호 안에 묶어 무시하지 말고 풀어 놓고 품위 있게 존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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